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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설교 블러그 - 샘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설교
[시 102:18] 다음 세대가 읽도록 주님께서 하신 일을 기록하여라. 아직 창조되지 않은 백성이, 그것을 읽고 주님을 찬양하도록 하여라.
나 중심의 삶은 착각
시편 127, 잠언16:1,9. 에베소서 1:17-19, 로마서14:7-9
2010년 6월 27일 ~ 7월 4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의 질타(叱咤)를 많이 받은 무리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들의 하나님이요 왕이라고 신앙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며 철저히 신앙행위를 하였다. 그들의 삶을 보면 개인적인 욕망, 명예욕, 물욕에 대한 탐심으로 신앙의 행위를 삼아 우월 심으로 가득한 세칭 신앙인들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이들은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성서를 넘어선 말씀이나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방편으로 삼아 우위적인 우월성으로 신앙행위를 만끽하는 사람들이었다. 사실로 그들의 삶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 중심의 삶은 착각' 이라는 옐로카드(yellow card)를 넌지시 보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지적하는 것이었다."(요5:42). 성서에서 이들은 외식하는 자의 표상으로 통용되고 있었으며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고 자부하며 철저히 이방인들을 배제하고 스스로 선택된 자로서 행세하는 그들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는 행위는 그들이 단순히 세례는 종교적인 행위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세례요한은 자기에게 세례 받으러 오는 그들을 향하여 '회개하라'고 한다. 이 회개의 선포는 곧 '나의 생각을 바꾸라'는 것임을 알게 한다. 흔히 사람들은 삶에서 자기의 계획에 의한 모든 일의 중심은 자기기준에 의한 것으로만 인식하여 자기의 길을 자기가 선택하며 의욕적으로 일을 하려는 삶이 '착각'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 '중심'이라는 것은 '기준'인데 그 기준이 개인인 '나'가 삶에 기준이 되는 것에 대한 착각을 경고하는 것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자신의 기준에 의한 계획이 하나님의 뜻 인양(引揚) 일방적으로 구사(構思)하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야고보서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 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언제나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하는 바에 의하여 그 의도가 창조의 섭리를 따르는 것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는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서는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 부터 나오느니라."하며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라 하심을 아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는 이치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을 위하여 말씀이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고 하신다. 그 약속은 구약에서 택한 백성을 통해 약속의 말씀을 실현해 보여 주시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길, 진리, 생명으로 가는 그 약속을 실현해 보이신다. 이것이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사실을 증명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궁금한 것 중에 하나가 지금 우리가 삶의 현실에서 항상 '내게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이다. '나 자신이 하는 일이 정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가?' '나는 지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있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이면 다 알아야 할 삶의 기준이 되는 문제이다.
시편에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이것은 인간들이 자기의 길을 계획하고 경영하는 것이 자기에게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한다.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고후6:2)고 하셨다는 말씀은 이를 더욱 알게 한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 일 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 바울은 에베소서의 본문에서 1)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2) 너희 마음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3)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 4) 그의 힘의 강력함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심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는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향한 깊은 사랑하심을 알게 하여 위로와 힘으로 그들에게 알게 하셨던 것이다. 이후 예수님은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심은 보다 적극적인 부정 속의 긍정의 은혜와 진리로 성육신하심과 그의 공생애,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삶을 보여 사실로 하여금 절대적인 사랑의 긍정을 보여서 사랑의 하나님을 알게 하신 것이었다.
하나님은 천지와 그 가운데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후 인간을 사랑하사 축복하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창1:26-28).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처음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이변은 하나님의 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류를 파멸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알게 하고 구원하려 함인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것은 인간의 의지와 스스로의 결정으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겼다. 이것은 약속을 어기는 죄와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구원의 긍정적인 뜻과 목적에 서로 어긋나는 상치(相馳)함을 알게 한다. '부정속의 긍정'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노아시대의 홍수의 심판도 심판을 위한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사랑의 긍정적인 면으로 알게 한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하여서도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삭을 번제로 드릴 것을 약속하신 약속도 자기중심의 사랑을 하나님중심의 사랑으로 승화시키기 위함이다. 주전 7-8세기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의 선지자들이 한결같이 '부정 속의 긍정'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이었음을 안다. 이들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도록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고 심판 후에 회개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는 것이다. 구약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하기 위하여 약속의 관계를 이루시고 하나님의 뜻의 역사를 이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의지(Will)를 말한다. 의지는 하나님의 바람이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마음, 원(願), 의향을 말한다. 하나님의 뜻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의지라면 우리는 내 뜻대로가 아닌 주님의 뜻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의도대로 산다는 것이다. 그 삶은 어떤 삶인가? 하나님의 뜻은 항상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살림(생명)이고 하나님의 의지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원(願) 이시며 마음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중심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의 사랑으로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기쁘시게 하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하루 종일 나의 삶을 내 뜻대로 판단하며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분별하여 행동하고 내 의지로 결정하며 계획된 삶을 살고 있다. 이 삶이 "나 중심의 삶" 이라면 이것은 모두 착각인 것이다. 착각은 본래의 뜻으로 잘못 아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착각은 통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잔인한 자유가 있다면 '착각'이라 한다. 인생은 착각의 연속이라 한다. 인간이 같은 것을 보고도 순간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중심적인 사고(思考)는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에 대한 지독한 주관된 믿음과 사랑만으로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한다. 바로 여기에 인간의 착각은 시작한다. 인간은 사회의 생활 속에서 착각하며 산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는 것에 대한 우리의 착각은 상당한 문제를 야기한다.
세상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착각 속에서 살기도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는 신앙의 행위를 보면 '나 중심의 삶' 에서 믿음이 착각하여 하나님 외에 다른 것으로 우상하며 사는 것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성서는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후13:5) 하신다. 착각은 되지 못한 것을 된 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착각이다. 우리가 사도들의 신앙의 고백을 하는 사도들의 그 사도신경(信經)과는 다르게 착각을 하고 신앙고백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착각은 사람의 정체를 알지 못하게 하며 창조의 뜻과 그 의도를 밝혀 땅에서의 삶을 실현해야 함에도 인간들은 자기가 무엇이관데 인간이 마치 스스로 있는 자처럼 행세하는 오만을 보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의 삶에 오셔서 저 낮은 곳을 찾으신다. 성육신의 신앙은 섬김과 나눔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여기 착각은 권세와 명예와 능력만이 과시하는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오늘의 신앙을 보게 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는 희미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만을 알게 하는 착각에서 죽어야 사는 생명의 이치를 망각하는 것이다. 기복신앙으로 길들여진 신앙의 풍토에는 심판으로 오실 재림의 기대는 거리가 멀어져 가고 현세의 풍요와 형통하는 복의 향유만이 현세의 축복으로 착각하고 있다. 교회는 조직과 제도 그리고 관습과 관행으로 크고 많으면 좋은 것으로 최고의 가치를 숭앙하는 교회운영으로 성도의 교제인 사랑은 사라지고 숫자놀이와 물량주의에 흠뻑 젖어 있는 오늘의 교회에서 착각을 보는 것이다. 교회는 사랑과 자비를 내 세우면서도 화해와 용서를 잃어버린 착각에서 세상과의 소통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고 하면서 죽음을 피하는 것으로 영원을 잃어버린 믿는 자의 신앙에서도 착각을 알게 한다.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복을 받으라.'고 외치지만 정녕 '복 있는 자'가 되라는 복의 착각에서 신앙함을 알게 한다. '성령 받으라.'고 쉽게 외치지만 정녕 '성령의 사람이 되라'는 말씀은 없다. 예수님이 가르친 기도문에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이 실현이 사람이 사는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방법에 있어서 인간적인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은 다르다.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쟁취하라, 투쟁하라고 하지만 성서는 죽으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한다. 버리면 얻고 약할 때는 강하고 강할 때는 약하며 섬김을 받으려면 먼저 대접하라 높임을 받고자 하면 낮은 자리를 알게 하는 역설적인 진리를 가르침의 참된 도리가 여기에 있다.
성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 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갈라디아서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 말씀 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얻으리라" 하신 말씀을 알게 한다. 이것은 이기적인 나를 접으면 참 된 나를 알게 된다는 이치이다. 이 진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마음이다. 이 마음은 자기를 비우는 마음이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자기의 뜻을 버리고 '없음'으로 빈 그릇이 되는 것이다. 이 빈 마음에서 순종이 나온다. 하나님은 '나의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사랑의 아버지의 말씀은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고 하나님의 약속은 믿어야 하고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맹종이 아니라 사랑하심에 대한 감사의 따름(순종)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는 마음은 효성(孝誠)이다. 마음을 다하여서 어버이를 잘 섬기는 정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한 마음으로 대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내 마음대로 행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근본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음에서 우리는 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는 것이다. 구약에서 이것을 깨닫는 솔로몬 왕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아들의 본분도 모르고 자기의 뜻대로 살아 온 자기의 삶에서 자기 나름의 지나온 나날의 세월을 살펴보면서 나의 영광만을 위한 삶으로 살아 온 삶을 뉘우치고 한탄하면서 회한(悔恨) 한다. 이를 터득한 깨달음을 모아 자신이 깨달은 삶의 터득을 구약의 '전도서' 에서 토해낸다. 전도자의 화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인 것을 알게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공경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경외(敬畏)하게 하고 경배의 자세로 하나님을 두렵게 여기는 뜻을 가지게 한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기본적인 자세로 지식과 지혜의 근본으로 이를 알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내가 판단하는 것들이 사실과 이치가 다를 수 있다는 착각도 인정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감각적으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데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보고 싶은 대로 믿는다. 사실 원하는 것, 믿는 것은 자기 생각의 오류이다. 이것을 '착각'이라 한다. 착각의 근본적인 조건은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착각에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정신이 건강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능력과 세상에 대해 약간의 착각을 하며 살아가고 그것이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것임을 알게 한다.
이러한 삶에서 착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바꾸는 것이다. 착각은 회개를 알게 한다. 회개 없이는 바꾸어지지 않는다. 이 시대에 하나님나라 백성인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미래는 그 삶의 질과 신앙의 체질이 바꾸어져야 한다. 회개는 바꿈이다. 병든 자를 건강으로 바꾸려면 지금까지의 자기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하나님 중심의 삶'은 지금 까지 '나 중심의 삶'의 체질을 바꾸어 놓아야 한다. 그 바꿈은 사람의 인격과 존재 전체를 새롭게 하는 능력을 가지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중심의 삶'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피부에서 뼈 속 깊이 까지 뜻과 의지와 감성까지 새롭게 하는 능력이 된다. 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은 '나 중심적인 세계에만 편중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삶의 현장에 심는 것이다. 즉 하늘 씨앗을 땅에 심는 것이다. 믿음은 믿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채우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비우는 것이요 가짐이 없어지는 것이다. 믿음은 심기어 져야 한다. 믿음은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주신 하나님의 은총이며 선물이다. 믿음은 사람의 존재를 포함한 실존의 변화를 위해 주어진 은총이요 도구인 것이다. 참 믿음은 교회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지금, 이 세상에서 나 작은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심기어 지게 하여야 한다. 이것을 모르면 '나 중심의 삶은 착각'이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시편 127, 잠언16:1,9. 에베소서 1:17-19, 로마서14:7-9
2010년 6월 27일 ~ 7월 4일
배성산 목사(baessaem@gmail.com)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의 질타(叱咤)를 많이 받은 무리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들의 하나님이요 왕이라고 신앙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며 철저히 신앙행위를 하였다. 그들의 삶을 보면 개인적인 욕망, 명예욕, 물욕에 대한 탐심으로 신앙의 행위를 삼아 우월 심으로 가득한 세칭 신앙인들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이들은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성서를 넘어선 말씀이나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방편으로 삼아 우위적인 우월성으로 신앙행위를 만끽하는 사람들이었다. 사실로 그들의 삶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 중심의 삶은 착각' 이라는 옐로카드(yellow card)를 넌지시 보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지적하는 것이었다."(요5:42). 성서에서 이들은 외식하는 자의 표상으로 통용되고 있었으며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고 자부하며 철저히 이방인들을 배제하고 스스로 선택된 자로서 행세하는 그들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는 행위는 그들이 단순히 세례는 종교적인 행위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세례요한은 자기에게 세례 받으러 오는 그들을 향하여 '회개하라'고 한다. 이 회개의 선포는 곧 '나의 생각을 바꾸라'는 것임을 알게 한다. 흔히 사람들은 삶에서 자기의 계획에 의한 모든 일의 중심은 자기기준에 의한 것으로만 인식하여 자기의 길을 자기가 선택하며 의욕적으로 일을 하려는 삶이 '착각'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 '중심'이라는 것은 '기준'인데 그 기준이 개인인 '나'가 삶에 기준이 되는 것에 대한 착각을 경고하는 것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자신의 기준에 의한 계획이 하나님의 뜻 인양(引揚) 일방적으로 구사(構思)하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야고보서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 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언제나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하는 바에 의하여 그 의도가 창조의 섭리를 따르는 것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는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서는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 부터 나오느니라."하며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라 하심을 아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는 이치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을 위하여 말씀이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고 하신다. 그 약속은 구약에서 택한 백성을 통해 약속의 말씀을 실현해 보여 주시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길, 진리, 생명으로 가는 그 약속을 실현해 보이신다. 이것이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사실을 증명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궁금한 것 중에 하나가 지금 우리가 삶의 현실에서 항상 '내게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이다. '나 자신이 하는 일이 정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가?' '나는 지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있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이면 다 알아야 할 삶의 기준이 되는 문제이다.
시편에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이것은 인간들이 자기의 길을 계획하고 경영하는 것이 자기에게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한다.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고후6:2)고 하셨다는 말씀은 이를 더욱 알게 한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 일 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 바울은 에베소서의 본문에서 1)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2) 너희 마음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3)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 4) 그의 힘의 강력함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심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는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향한 깊은 사랑하심을 알게 하여 위로와 힘으로 그들에게 알게 하셨던 것이다. 이후 예수님은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심은 보다 적극적인 부정 속의 긍정의 은혜와 진리로 성육신하심과 그의 공생애,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삶을 보여 사실로 하여금 절대적인 사랑의 긍정을 보여서 사랑의 하나님을 알게 하신 것이었다.
하나님은 천지와 그 가운데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후 인간을 사랑하사 축복하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창1:26-28).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처음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이변은 하나님의 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류를 파멸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알게 하고 구원하려 함인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것은 인간의 의지와 스스로의 결정으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겼다. 이것은 약속을 어기는 죄와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구원의 긍정적인 뜻과 목적에 서로 어긋나는 상치(相馳)함을 알게 한다. '부정속의 긍정'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노아시대의 홍수의 심판도 심판을 위한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사랑의 긍정적인 면으로 알게 한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하여서도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삭을 번제로 드릴 것을 약속하신 약속도 자기중심의 사랑을 하나님중심의 사랑으로 승화시키기 위함이다. 주전 7-8세기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의 선지자들이 한결같이 '부정 속의 긍정'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이었음을 안다. 이들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도록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고 심판 후에 회개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는 것이다. 구약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하기 위하여 약속의 관계를 이루시고 하나님의 뜻의 역사를 이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의지(Will)를 말한다. 의지는 하나님의 바람이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마음, 원(願), 의향을 말한다. 하나님의 뜻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의지라면 우리는 내 뜻대로가 아닌 주님의 뜻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의도대로 산다는 것이다. 그 삶은 어떤 삶인가? 하나님의 뜻은 항상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살림(생명)이고 하나님의 의지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원(願) 이시며 마음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중심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의 사랑으로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기쁘시게 하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하루 종일 나의 삶을 내 뜻대로 판단하며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분별하여 행동하고 내 의지로 결정하며 계획된 삶을 살고 있다. 이 삶이 "나 중심의 삶" 이라면 이것은 모두 착각인 것이다. 착각은 본래의 뜻으로 잘못 아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착각은 통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잔인한 자유가 있다면 '착각'이라 한다. 인생은 착각의 연속이라 한다. 인간이 같은 것을 보고도 순간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중심적인 사고(思考)는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에 대한 지독한 주관된 믿음과 사랑만으로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한다. 바로 여기에 인간의 착각은 시작한다. 인간은 사회의 생활 속에서 착각하며 산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는 것에 대한 우리의 착각은 상당한 문제를 야기한다.
세상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착각 속에서 살기도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는 신앙의 행위를 보면 '나 중심의 삶' 에서 믿음이 착각하여 하나님 외에 다른 것으로 우상하며 사는 것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성서는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후13:5) 하신다. 착각은 되지 못한 것을 된 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착각이다. 우리가 사도들의 신앙의 고백을 하는 사도들의 그 사도신경(信經)과는 다르게 착각을 하고 신앙고백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착각은 사람의 정체를 알지 못하게 하며 창조의 뜻과 그 의도를 밝혀 땅에서의 삶을 실현해야 함에도 인간들은 자기가 무엇이관데 인간이 마치 스스로 있는 자처럼 행세하는 오만을 보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의 삶에 오셔서 저 낮은 곳을 찾으신다. 성육신의 신앙은 섬김과 나눔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여기 착각은 권세와 명예와 능력만이 과시하는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오늘의 신앙을 보게 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는 희미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만을 알게 하는 착각에서 죽어야 사는 생명의 이치를 망각하는 것이다. 기복신앙으로 길들여진 신앙의 풍토에는 심판으로 오실 재림의 기대는 거리가 멀어져 가고 현세의 풍요와 형통하는 복의 향유만이 현세의 축복으로 착각하고 있다. 교회는 조직과 제도 그리고 관습과 관행으로 크고 많으면 좋은 것으로 최고의 가치를 숭앙하는 교회운영으로 성도의 교제인 사랑은 사라지고 숫자놀이와 물량주의에 흠뻑 젖어 있는 오늘의 교회에서 착각을 보는 것이다. 교회는 사랑과 자비를 내 세우면서도 화해와 용서를 잃어버린 착각에서 세상과의 소통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고 하면서 죽음을 피하는 것으로 영원을 잃어버린 믿는 자의 신앙에서도 착각을 알게 한다.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복을 받으라.'고 외치지만 정녕 '복 있는 자'가 되라는 복의 착각에서 신앙함을 알게 한다. '성령 받으라.'고 쉽게 외치지만 정녕 '성령의 사람이 되라'는 말씀은 없다. 예수님이 가르친 기도문에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이 실현이 사람이 사는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방법에 있어서 인간적인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은 다르다.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쟁취하라, 투쟁하라고 하지만 성서는 죽으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한다. 버리면 얻고 약할 때는 강하고 강할 때는 약하며 섬김을 받으려면 먼저 대접하라 높임을 받고자 하면 낮은 자리를 알게 하는 역설적인 진리를 가르침의 참된 도리가 여기에 있다.
성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 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갈라디아서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 말씀 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얻으리라" 하신 말씀을 알게 한다. 이것은 이기적인 나를 접으면 참 된 나를 알게 된다는 이치이다. 이 진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마음이다. 이 마음은 자기를 비우는 마음이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자기의 뜻을 버리고 '없음'으로 빈 그릇이 되는 것이다. 이 빈 마음에서 순종이 나온다. 하나님은 '나의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사랑의 아버지의 말씀은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고 하나님의 약속은 믿어야 하고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맹종이 아니라 사랑하심에 대한 감사의 따름(순종)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는 마음은 효성(孝誠)이다. 마음을 다하여서 어버이를 잘 섬기는 정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한 마음으로 대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내 마음대로 행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근본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음에서 우리는 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는 것이다. 구약에서 이것을 깨닫는 솔로몬 왕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아들의 본분도 모르고 자기의 뜻대로 살아 온 자기의 삶에서 자기 나름의 지나온 나날의 세월을 살펴보면서 나의 영광만을 위한 삶으로 살아 온 삶을 뉘우치고 한탄하면서 회한(悔恨) 한다. 이를 터득한 깨달음을 모아 자신이 깨달은 삶의 터득을 구약의 '전도서' 에서 토해낸다. 전도자의 화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인 것을 알게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공경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경외(敬畏)하게 하고 경배의 자세로 하나님을 두렵게 여기는 뜻을 가지게 한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기본적인 자세로 지식과 지혜의 근본으로 이를 알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내가 판단하는 것들이 사실과 이치가 다를 수 있다는 착각도 인정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감각적으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데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보고 싶은 대로 믿는다. 사실 원하는 것, 믿는 것은 자기 생각의 오류이다. 이것을 '착각'이라 한다. 착각의 근본적인 조건은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착각에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정신이 건강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능력과 세상에 대해 약간의 착각을 하며 살아가고 그것이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것임을 알게 한다.
이러한 삶에서 착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바꾸는 것이다. 착각은 회개를 알게 한다. 회개 없이는 바꾸어지지 않는다. 이 시대에 하나님나라 백성인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미래는 그 삶의 질과 신앙의 체질이 바꾸어져야 한다. 회개는 바꿈이다. 병든 자를 건강으로 바꾸려면 지금까지의 자기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하나님 중심의 삶'은 지금 까지 '나 중심의 삶'의 체질을 바꾸어 놓아야 한다. 그 바꿈은 사람의 인격과 존재 전체를 새롭게 하는 능력을 가지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중심의 삶'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피부에서 뼈 속 깊이 까지 뜻과 의지와 감성까지 새롭게 하는 능력이 된다. 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은 '나 중심적인 세계에만 편중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삶의 현장에 심는 것이다. 즉 하늘 씨앗을 땅에 심는 것이다. 믿음은 믿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채우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비우는 것이요 가짐이 없어지는 것이다. 믿음은 심기어 져야 한다. 믿음은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주신 하나님의 은총이며 선물이다. 믿음은 사람의 존재를 포함한 실존의 변화를 위해 주어진 은총이요 도구인 것이다. 참 믿음은 교회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지금, 이 세상에서 나 작은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심기어 지게 하여야 한다. 이것을 모르면 '나 중심의 삶은 착각'이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이사야41:18)


